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순간을 자주 겪게 된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꽤 공들여 만든 시안은 반응이 미지근한데,
“이건 그냥 무난한데…” 싶었던 디자인이
의외로 바로 통과되는 순간.
예전에는
이걸 단순히 취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잘 만들었다고 느끼는 디자인은
항상 같은 기준 위에 있지 않다.
이 글은
디자인 수준을 낮추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클라이언트 말만 듣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로 통과되고, 수정이 적고,
다음 작업으로 이어졌던 디자인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상업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경험 정리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인보다 ‘상황’을 먼저 본다
디자이너는
레이아웃, 비율, 컬러 조합, 타이포그래피를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그걸 먼저 보지 않는다.
클라이언트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 이게 우리 사업에 어울리는지
- 고객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지
- 대표나 상사에게 보여도 문제없을지
즉, 디자인의 완성도보다
**“이 선택이 나에게 안전한가”**를 먼저 판단한다.
그래서
아무리 트렌디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도
설명이 길어지거나,
“의도를 이해해야만 좋아 보이는 디자인”이 되는 순간
결정은 느려진다.
“좋은데요”라는 말이 항상 좋은 신호는 아니다
실무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좋은데요”다.
처음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경험상 이 말의 의미는 꽤 다양하다.
- 이 정도면 무난하겠다
-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 당장 반대할 이유는 없다
즉,
확신이라기보다 보류에 가까운 긍정인 경우가 많다.
진짜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다.
- “이걸로 진행하죠”
- “이 방향으로 정리해주세요”
- “언제 적용 가능할까요?”
이 말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 디자인은 아직
클라이언트에게 완전히 선택된 상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설명이 필요 없는 디자인은 수정도 적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유난히 수정이 적고
진행이 매끄러웠던 디자인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 디자인을 거의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고
- 메시지가 바로 보였고
- 버튼이나 흐름이 직관적이었다
그래서
“이건 이런 의도고요” 같은 말이 필요 없었다.
반대로
설명을 많이 해야 했던 디자인은
대부분 수정도 길어졌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
디자인이 틀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해석 부담이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상업 디자인에서는
이 차이가 작업 난이도를 크게 바꾼다.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건 ‘안전한 선택’이다
이 말을 하면
디자인이 보수적으로 흘러갈 것 같아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클라이언트의 판단은 대부분 합리적이다.
- 이전에 본 적 있는 구조
- 익숙한 분위기
- 실패 확률이 낮아 보이는 선택
이건
센스가 없어서가 아니라
리스크를 줄이려는 판단이다.
그래서
너무 실험적이거나
너무 새로운 디자인은
“멋있다”는 말은 들을 수 있어도
“이걸로 가죠”까지 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잘 통과되는 디자인의 특징
개인적인 경험을 기준으로 보면
클라이언트 반응이 좋았던 디자인들은
대체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 첫 화면에서 핵심 메시지가 바로 보인다
- 버튼의 역할이 명확하다
- 색은 많지 않지만 역할이 분명하다
- 구조가 단순해서 설명할 게 없다
이런 디자인은
회의 자리에서도 말이 짧아지고,
수정 요청도 구체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상업 디자이너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기준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디자인만 하다 보면
디자이너로서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기준을 작업의 중심에 두고 있다.
- 구조와 흐름은 클라이언트 기준
- 디테일과 완성도는 디자이너 기준
클라이언트가 중요하게 보는
‘안전함’은 지키되,
그 안에서
타이포, 여백, 비율 같은
디자이너의 영역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균형이 맞을 때
작업도 덜 힘들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 작업 마무리 전에 꼭 하는 질문
작업을 끝내기 전
요즘 스스로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이 디자인은
설명 없이도
바로 선택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YES가 나오면
그 디자인은
대체로 잘 통과됐다.
상업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디자이너가 얼마나 많은 걸 보여줬느냐보다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빨리 결정할 수 있느냐인 경우가 많다.
마무리하며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디자인은
센스가 없어서 선택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 입장에서 가장 덜 위험해 보이는 선택을 고른다.
상업 디자이너라면
이 현실을 무시한 채
디자인을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면서도
디자인의 퀄리티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는 것 아닐까.
적어도 나는
요즘 그렇게 작업하고 있다.